CEO 단상
구성원 여러분
국내사업부 이국헌 사업부장의 단상을 등재합니다.
감사합니다.
--------------------------------------------------------------
9월이 되었습니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많이 남아있지만, 잠을 청하기 위해 에어컨이 필요한 그런 시기는 좀 벗어난 것 같은 요즈음입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8월에 여름 휴가를 제주도 서귀포에서 보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휴가는 딸아이도 함께 가게 되어 그 애가 가보고 싶은 곳을 중심으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여러 장소가 있었는데 그 중에 ‘유동룡 미술관’이 있었습니다. 생소한 이름의 미술관이라 ‘설립자의 이름을 붙인 곳인가? 아니면 미술 작가의 이름을 붙인 곳인가?’하는 의문을 가지고 방문을 하였는데, 그 곳은 재일교포 건축가로 알려진 ‘이타미 준’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씨가 설계하고 건축한 미술관이었습니다. 이타미 준의 본명이 유동룡입니다.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이 미술관에는 연면적 700m2, 지상 2층 규모의 공간에 1970년부터 2011년까지 이타미 준이 남긴 건축 작품과 회화·서예·조각 등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그의 수집품과 저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딸아이에게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 물어보았는데, 원래는 이타미 준이 설계한 ‘수(水), 풍(風), 석(石) 미술관’을 가보고 싶었는데, 예약이 이미 마감이 되어서 이곳으로 변경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 덕에 저도 조금만 알고 있었던 건축가 이타미 준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타미 준은 1935년 일본 도쿄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나 40여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을 했습니다. 그의 예명 ‘이타미 준(ITAMI JUN)’은 일본에서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했던 일본식 이름으로, 그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을 때 이용했던 오사카 이타미 국제공항과 친구인 작곡가 길옥윤씨의 예명 ‘쥰’, 이 두 가지를 조합하여 만든 것입니다.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일생을 재일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과 일본의 양쪽에서 늘 이방인이라는 시선을 받아온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의 예명에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국제공항을 출발과 도착이란 양극단의 상황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정체성의 성격이 그와 같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유동룡 미술관에서는 ’25.04.15~’26.03.29 기간에 ‘미묘하게 열린 어둠 안에서 : 이타미 준’이라는 전시명으로 기획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유독 제 눈길을 끈 것은 1층 ‘먹의 공간’으로 명명된 라이브러리에 전시된 원고지 위에 잉크로 쓴 그의 육필 원고와 2층 전시관에 전시된 그가 그린 드로잉이었습니다. 공통점은 둘 모두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그에게 있어 드로잉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신의 드로잉에 대해 그는 글로써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게 드로잉이란 확실한 형태를 띠지는 않으나 건축의 한 단면이나 포름을 파악하기 위한 생생한 영위이며, 모순으로 넘친 선의 집합체와도 같다. 또 그 자체가 건축에 대한 원초 체험이며 건축에 대한 구조의 연속이기도 하다. (중략) 나의 건축 작업에서 글과 드로잉은 솜씨는 서툴러도 사람 냄새가 나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건축을 되돌아보기 위한 훈련의 선이라고 하겠다. 그것은 모두 살아가기 위한 것이고 심장이 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각형 안에 원을 그리고 그 형상이 공기와 같이 청명하고 생명을 머금은 것으로 드러나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것도 어떤 경지에서 보면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는 새로운 건축을 위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에 전시된 그의 드로잉을 가까이서 보면, 높은 해상도의 세련된 렌더링 이미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생기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논리적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닌 직관적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그런 것입니다. 그가 글을 통해 드로잉에 대해 얘기한 것이 무슨 뜻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고, 아주 오랜만에 특별한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타미 준에 대해서는 아래 유동룡 미술관의 홈 페이지를 통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컴퓨터의 지배를 받아 현대 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건축에는 온기가 사라지고 디자인의 독특성에만 쏠려 감동을 잃어가고 있다.”고 평했던 이타미 준은 스스로를 ‘마지막 남은 손의 건축가’라 지칭하며 드로잉으로 건축에 대한 열정을 발산했던 철저한 아날로그 건축가라고 후세에 기억될 것 같습니다.
유동룡 미술관 밖의 세상은 그가 평했던 현대 건축의 특징이 압도적인 공간이 된 것 같습니다.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용 건물 외에 주거용 건물 또한 자산 증식의 핵심 수단이자 상품 가치로 평가되는 세상이 된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거기에 더해 건축물을 만드는 과정 또한 큰 변곡점을 곧 맞이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22년 OpenAI가 ChatGPT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AI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한 이후 해마다 AI 기술의 발전속도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이 미치고 있으며, 건설산업도 더디긴 하지만 예외가 아닌 상황입니다. 최근 몇 년간의 발전 속도를 보면, 정말 머지않은 미래에 생성형 AI로 설계의 전과정이 자동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는 종래의 작업 프로세스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극대화된 도구로 만들어진 건축물로 이루어진 세상은 어떤 곳일까 생각해 봅니다.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지고 감동이 있는 그런 곳일까요? 그런 공간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어떤 인류가 될까요?” 생각하는 힘과 손이 만드는 흔적을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여름의 한때는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연필을 찾아 칼로 깎고 흰 종이 위에 무언가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 예찬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입니다
감사만이 보석입니다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
감사만이 기도입니다
기도 한 줄 외우지 못해도
그저 고맙다 고맙다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날
삶 자체가 기도의 강으로 흘러
가만히 눈물 흘리는 자신을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