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edensreich Hundertwasser
Friedensreich Hundertwasser
Friedensreich Regentag Dunkelbunt Hundertwasser (1928. 12. 15. - 2000. 2. 19.)는 오스트리아 화가이자 건축가이다. 비엔나에서 Friedrich Stowasser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말까지에 있어서 가장 잘 알려진 근대 오스트리아 작가이다.
생애
아버지인 Ernst Stowasser는 Hundertwasser가 한 살이 되던 해 사망한다. 2차 세계대전은 Hundertwasser와 유태인이었던 그의 어머니 Elsa에게 있어서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생전에 천주교신자였기 때문에 그들도 천주교신자 행세를 하여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Hundertwasser는 히틀러 유겐트에 가입하기도 했다.
Hundertwasser는 예술적 소질을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비엔나의 Academy of Fine Arts에서 3개월을 보냈다. 이 때부터 그는 자신의 작품에 Stowasser라는 본명대신 Hundertwasser라는 이름으로 서명하기 시작했다. 눈을 끄는 것은 그 무엇이라도 스케치하기 위해서 그림도구를 항상 챙겨 들고 여행 다니는 것을 즐겼다. 1952년 3월 비엔나의 전시회에서 그는 처음으로 화가로서 성공을 맛보게 된다.
Hundertwasser라는 성은 슬라브어 sou와 같은 의미인 100을 가리키는 독일어 hundert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이름인 Friedensreich는 평화의 땅 peaceland 혹은 평화로운 peacerich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가 종종 쓰곤 한 다른 이름으로서는 Regentag와 Dunkelbunt가 있었는데 각각 Rainy Day와 Darkly multicoloured라는 의미로 그의 예술적 취향을 엿볼 수 있다.
Hundertwasser는 1958년 Herta Leitner와 결혼하였으나 2년 후 곧 이혼하였다. 그는 1962년 재혼하였으나 1966년 다시 이혼하였다. 이때 이미 그는 예술가로서 널리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1950년대 초 건축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Hundertwasser는 건축뿐만 아니라 깃발, 우표, 동전, 포스터 디자인 등 실용디자인도 했다. 그가 디자인 한 깃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마오리족의 모티브에서 따온 뉴질랜드 국기 디자인이었던 Koru Flag이다. 오스트리아 체신청을 위한 우표뿐만 아니라 그는 Cape Verde Islands와 제네바 국제 연합의 세계인권선언 35주년 기념 우표도 디자인하였다.
Hundertwasser는 뉴질랜드를 그의 공식적인 거주지로 생각하였고 세계 어디를 가든 그의 시계는 뉴질랜드 시간에 맞춰져 있었다. 그가 71세가 되던 2000년 퀸 엘리자베스 2세 호에서 사망한 후 그의 시신은 뉴질랜드에 옮겨져 그 곳에 묻혔다.
예술적 성향과 주제
Hundertwasser의 독특하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예술적 성향은 그의 회화, 환경보호주의, 철학, 건축입면의 디자인, 우표, 깃발, 의류 등 모든 분야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공통된 주제로서 밝은 색, 유기적인 형상, 인간과 자연의 조화, 강한 개성주의, 직선의 거부 등을 들 수 있다.
그의 건축성향은 유기적 형태와 타일의 사용에 있어서 *Antonio Gaudi (1852-1926) 와 종종 비교되기도 하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독특한 점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는 또한 비엔나 **제세션 Vienna Secession 운동 으로부터 특히 오스트리아 화가인 Gustav Klimt (1862-1918)와 Egon Schiele (1890-1918)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나선형에 매료되었으며 직선을 악마의 도구라고 불렀으며 그의 예술이론을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자동기술법 ***Surrealist automatism 에 빗대어 transautomatism이라고 불렀으나 작가자신 보다는 감상자의 경험에 더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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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출신의 건축가로 자유롭게 흐르는 선의 형태를 3차원의 표현력을 갖는 건축으로 전환시킨 아르누보 건축가중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다. 그는 자연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얻어 유추한 형상을 시각적, 공간적 표현으로 사용하였으며 그리고 인체의 골격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유추해내기도 하여 현대건축의 표현주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예시하였다.
**1897년 오스트리아 예술가연맹에서 탈퇴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기존의 것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추구하였다.
***무의식의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려는 초현실주의의 의도를 나타낸 대표적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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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Hundertwasser는 과감한 채색의 회화를 통해 첫 주목을 받게 되었으나 건축디자인으로 인해 더 널리 알려 지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비정형적인 형태와 자연에서 따온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그 예로 비엔나의 Hundertwasser House에는 물결치는 바닥, 잔디와 흙으로 덮인 지붕, 창 밖으로 자라 나온 나무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그 대지에 들어 설 어떤 추한 것을 막기 위해”라며 Hundertwasser House의 디자인 비용조차도 받지 않았다.
1950년대 초부터 그의 예술활동은 건축에 집중되게 되는데 이것은 선언문, 에세이 혹은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 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예로 그는 1958년 Seckau의 대수도원에서 열린 예술과 건축행사에서 건축의 합리주의에 맞서는 진부함 선언문 Mouldiness Manifesto against Rationalism in Architecture을 크게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그는 창문권 Window Right를 요구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파트의 창문 바깥쪽으로 팔이 닿는 범위 정도의 벽돌 부분을 벗겨 내고 긴 페인트 붓으로 색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옆집에 살고 있는 갇히고, 노예화되고, 규격화된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멀리서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1967년 그는 제3의 피부에 대한 권리를 위한 나체 연설 Speech in Nude for the Right to a Third Skin을 하였으며 전통건축의 메마른 격자 시스템과 기계 생산된 상품들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를 저주하였다. 1968년 비엔나의 Concordia 프레스클럽에서 ****Loos 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건물의 수선을 허용하는 법이 아니면 건축을 보이콧하겠다는 선언문 Loose from Loos, A Law Permitting Individual Buildings Alterations or Architecture-Boycott Manifesto을 통해 합리주의와 직선, 기능적인 건축을 거부하였다.
Hundertwasser는 인간의 불행은 오스트리아 건축가 Adolf Loos의 전통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메마르고 단순반복적인 건축에 의한 것이었다고 믿었다. 그는 그런 형태의 건축을 보이콧하였으며 그 대신 건축의 자유로움과 독자적인 구조의 창조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였다.
1972년 그는 당신의 창문권 ? 당신의 나무 의무 Your window right ? your tree duty 선언문에서 도시환경에서 나무를 심는 것은 의무사항이며 “만약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자는 자연의 손님임을 인식하고 그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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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lof Loos, 아르 누보의 장식적 경향에 반대하고 합리주의적 디자인 이론을 주창한 최초의 건축가중 한 사람. 그의 저서로는 장식과 죄악 Ornament and crime (1908)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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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Hundertwasser는 그의 첫 건축모형을 지었다. 그 모형은 유로비전 TV 쇼 소원을 빌어봐 Wunsch Dir was를 위한 것이었는데 옥상조경과 뻗어 나온 나무 Tree Tenant와 그의 창문권을 예증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모형들에서 그는 새로운 건축 형태들, 예를 들어 나선형 주거, 테라스 주거, 고층의 목초지 주거 등을 개발하였다.
그의 건축작품을 통해 Hundertwasser는 단순반복대신 다양함을, 격자시스템대신 속박 받지 않는 불규칙성을 가능케 하는 유기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Church of St. Barbara, Barnbach, 1984-1988
전쟁이 끝난 후 1948-49년, Franz Derler 신부는 불충분한 자재와 어려운 여건 하에서 Barnbach에 성당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기간을 두고 교구 성당으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다.
교구사제는 Barnbach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던 유명한 우표제작가 Wolfgang Seidel를 통해 그와 친분관계에 있던 Hundertwasser에게 좀 더 나은 디자인을 의뢰하기로 하고 성당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키로 하였다. Hundertwasser는 즉시 아무 대가 없이 일을 맡기로 하였으나 실제로 성당의 건축은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시장인 Konrad Bergmann은 이 프로젝트가 Barnbach에 있어서 역사적인 기회란 점을 인식하고 Hundertwasser 프로젝트를 위해 여러 방면으로 협력을 이끌어 낸 결과 교구의회와 Barnbach의 원로원은 만장일치로 프로젝트에 찬성하였으며 1987년 9월 17일 건축위원회는 프로젝트 건축을 승인하였다.
Hundertwasser의 아이디어는 성전의 모습을 새롭게 정의하였다. 입면의 상징들-십자가, 양, 비둘기, 펠리컨, 물고기, 술잔, 빵, 나무, 배, 예수의 상징, 심장, 닻, 알파, 오메가-은 그 상징들의 의미를 알고,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스로 그 의미 있는 것이 되어 나타날 것이며 하늘을 찌를 듯한 탑의 황금색은 영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재건축은 1987년 가을에 시작하여 1988년 여름에 마무리되었다.
Hundertwasser House, Vienna, 1977-86
Hundertwasser House는 그 구조뿐만 아니라 색 다른 입면으로도 주변의 어떤 건물과도 달리 두드러져 보인다. 퀼트 작품에서와 같이 빨강, 파랑, 노랑, 흰색, 그리고 회색의 요소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화려하고, 여러 부분들로 구성된 집합체를 이루고 있다. 밖으로 내민 창, 발코니, 건물 안에서 밖으로 자라 나온 나무, 타일, 유리조각,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의 창 들은 건물 입면에 독특함을 불어 넣고 있다.
각 세대들은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져서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이를 통해 Hundertwasser는 거주자들이 자신들의 집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안의 집’을 밖에서도 구별할 수 있기를 바랬다. 뿐만 아니라, 검은 선과 모자이크 타일로 된 띠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구분해 주고 있다.
입면에서 회색으로 칠해진 곳은 어린이 놀이터, 계단과 복도, 겨울정원, 업무공간, 카페테라스와 같은 공용공간이다.
이제 입면은 처음 오픈한 후 몇 년 만에 더 이상 그 상쾌하고 밝은 색으로 반짝이지 않는다. 날씨로 인한 훼손은 먼지와 매연과 더불어 세월에 걸쳐 그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것은 Hundertwasser가 의도한 바대로 모두 그대로 된 것이었다. 그는 특히 오래되고 비바람 맞은 입면만이 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고 느꼈다. 그는 자연의 힘을 빌어 입면에 독특한 색을 더하게 했으며 이런 과정이 사람의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종류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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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rict Heating Plant Spittelau, Vienna, 1988-92
Spittelau의 지역난방공장은 그 당시 새로 지어질 종합병원에 난방을 공급하기 위해 1971년 건립되었으며 같은 부지 내에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소각장도 같은 시기에 세워 졌다. 쓰레기 소각장에서 생산된 에너지는 지역난방의 열원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었다.
Hundertwasser는 소각장이 존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확신을 가진 후 공장 입면의 새로운 건축 디자인을 하기로 했다. 그는 공장건축이 주거건축만큼 우리의 삶의 터전에 있어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일반적으로 공장건축에 사용되는 재료들인 콘크리트, 철, 유리, 타일, 에나멜 등을 사용하여 입면을 구성하였다. 직선으로 뻗은 지평선 위에 안장모양의 굽은 지붕라인이 더해졌으며, 공장의 모서리마다에는 파란색의 기둥모양으로 장식이 되고 위로 갈수록 가늘어 지면 그 위에는 황금색의 구가 얹혀졌다. 불규칙한 체크무늬의 외벽에 기묘하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서로 다른 크기의 창과 쓰레기 조각들을 상징하는 타일 장식들은 공장의 거대하고 위압적인 입면을 다소나마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있다.
솟아 오르는 듯한 푸른 에나멜로 장식된 굴뚝은 깨끗한 공기와 물을 상징하고 있다. 쓰레기 트럭이 드나 드는 캐노피 위에는 큰 나무가 자라 나고 환기구 커버는 묘하게 Hundertwasser의 모자와 닮아 있다. 광섬유로 장식된 빛나는 황금색의 구와 두 개의 황금 띠가 둘려 있는 굴뚝은 비엔나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낫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나아감을 상징하고 있다.
Vienna District Heating Plant - Office Building